정부는 경제 위기 시마다 유동성을 공급합니다. 기준금리를 내리고, 채권을 매입하고, 때로는 직접 재정을 풀어 가계에 돈을 줍니다. 그런데 이상합니다. 언제나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, 서민은 체감 경기가 나빠졌다고 느낍니다. 왜일까요?

이 질문에 답하려면 ‘돈이 흐르는 구조’, 즉 부의 증식 구조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.


 돈이 풀릴 때,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


정부의 돈풀기는 대부분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나 채권 매입으로 시작됩니다.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자금을 접하는 곳은 은행, 증권사, 대기업, 기관투자자입니다. 개인 투자자나 일반 서민은 그 뒤에야 자산 가격 상승을 체감하게 되죠. 이 구조에서 돈의 흐름은 계층 간 격차를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됩니다.

  • 부자들은 ‘리스크를 감수할 여유’가 있다: 자산 가격이 요동칠 때, 서민은 대출에 의존하거나 소비를 줄입니다. 반면, 자본을 보유한 부자는 저평가된 자산을 저가에 대량 매입할 수 있습니다. 부자들은 “돈이 풀리면 자산이 오른다”는 공식을 이미 체득하고 있으며, 시장에 들어가야 할 시점을 놓치지 않습니다.

 

‘자산 인플레이션’은 누구의 기회인가?


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풀릴 때 상품 시장보다 자산 시장이 먼저 반응합니다.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로 인해 주식, 부동산, 코인 등 자산 가격이 폭등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.

  • 유동성은 자산시장에 몰린다: 서민은 실질소득이 늘지 않기 때문에 이 자산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습니다. 반면, 부자들은 자산을 사고파는 것만으로 부를 증식할 수 있죠.

  • 서울 아파트와 법인 투자자: 서울 아파트 실거래를 보면, 2020~2022년 사이 법인과 다주택자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. 정부가 금리를 인하하고, 시중에 돈이 풀리는 시점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산을 매입합니다. 그러다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 빠르게 정리하고 ‘차익’을 실현하죠. 이런 움직임은 일반 서민의 내 집 마련 타이밍을 빼앗고, 거품이 낀 고점에서 진입하게 만드는 장벽이 됩니다.

 

금융 시스템은 누구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었나


정부가 기준금리를 낮춰도,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입니다. 은행은 담보가 있거나, 소득이 안정적인 고신용자에게만 저금리 혜택을 제공합니다. 부자는 싼 이자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자산을 매입할 수 있고, 서민은 높은 금리와 규제에 막혀 자산 접근조차 어렵습니다.

  • ‘좋은 대출’은 신용이 높은 자에게만: 서민은 대출을 받기 어렵고, 대출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금리가 높거나 조건이 불리한 경우가 많습니다. 반면, 부유층은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받아 자산을 매입합니다.

  • 기관투자자의 특권 구조: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기관과 외국인은 시장 정보, 세금 혜택, 거래 속도 면에서 개인보다 우위에 있습니다. 정부가 돈을 풀 때 이들은 지능적으로 매수-매도 타이밍을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합니다. 반면, 개인은 뉴스에 반응해 뒤늦게 진입했다가 손실을 입는 구조에 놓입니다.

 

이 구조가 반복되면 생기는 것 - 자산의 세습화


고소득자와 고자산가 가정은 자녀에게 자산을 증여하고, 그 자녀는 이미 임대수익, 배당, 차익을 기반으로 생애주기를 시작합니다. 반면, 자산이 없는 청년은 월세를 내며 대출 상환을 하며 살아갑니다. 이러한 구조가 고착되면, 사회는 ‘계층 이동’이 불가능한 자산 카스트로 변하게 됩니다.

  • 부의 대물림은 자산에서 출발한다: 자산을 보유한 계층은 자산의 가치를 자녀에게 물려주고, 자산이 없는 계층은 빈곤의 악순환에 빠집니다.

  • 정부 정책이 오히려 이를 가속화?: 유동성 공급이 자산시장으로만 흘러가도록 설계된 현 구조는 부유층에게 세금 회피, 투자 수단 다양화, 수익 최적화 기회를 더 많이 줍니다. 즉, 정부 정책이 이론적으로는 중립적이지만, 현실적으로는 편향적인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.

 

결론 - 부자가 되는 구조는 설계되어 있다


“정부가 돈을 푼다 = 모두에게 돈이 간다”는 착각입니다. 현실에서는 부자에게 먼저 가고, 더 많이 가고,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구조가 존재합니다.

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, 유동성 확대는 자산을 가진 자의 이득이 되고, 자산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격 상승이라는 고통만 남습니다.

진짜 필요한 것은 ‘돈을 얼마나 풀 것인가’가 아니라 그 돈이 어디로, 누구에게, 어떤 방식으로 가느냐입니다.

정책의 설계자가 이 구조를 인식하고 재분배 중심, 실물경제 투자 유도, 금융 특권 완화 등 구조적 개입을 하지 않는 한, “부자만 더 부자가 되는 구조”는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.